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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미애
    女星 프로파일링 2009. 10. 3. 17:48

    <미애와 루이, 318일간의 버스여행>의 그 미애 !
    처음 만난건 아마 중학교 3학년이었을 거다. 책을 보면서 '너무 멋지다.' 라고 생각했다. 이 여자의 삶의 방식도. 이 여자도. 주체할 수 없이 끌리는 마음을 가지면서 친구랑, 우리도 꼭 이렇게 살자고. 프랑스인 남편과 같이 캠핑카타고 세계 여행을 하며 살자고 얘기했었다.

    최미애
    1965년 의정부 태생. 학창 시절 182cm라는 큰 키 때문에 주위의 놀림감이 되었고,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 농구선수로도 뛴 바 있다. 1987년 패션모델로 데뷔하며 큰 키가 오히려 장점이 되어 콤플렉스에서 벗어났다. 국내외 패션 컬렉션에서 이신우, 이세이 미야케, 앙드레 꾸레주 등 세계의 유명 디자이너와 함께 패션쇼를 가지며 톱 모델로서 전성기를 누렸다. 프랑스인 사진작가 루이와 결혼한 뒤에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변신해 홍콩, 파리, 일본을 거쳐 지금은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삶이 배어 있는 얼굴, 화장하지 않은 얼굴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이 그의 메이크업 철학이다. 도전 없는 밋밋한 삶에 길들여지는 것을 거부하며 부부가 의기투합해 이번 여행을 결행했고, 그 덤으로 남편과의 문화적 거리를 좁히는 수확도 얻었다. 남편에게 한국의 숨은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조만간 우리나라의 외딴 섬과 산골 마을로 한 달여 동안 가족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318일간... 프로필]


    김경의 칼럼들을 읽다가 발견해서 첨부해둔다.
    가장 멋진 여자, 미애
    [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진짜 보헤미안은 ‘보보스’만 판치는 한국 패션계를 결국 떠나는가  ▣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 (사진 / BAZZAR 장루이)

    내가 아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여자 미애를 소개한다. 전직 패션모델이었고 10여년 전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변신한 이 여자는 패션과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으면서도 그 자신은 사람들이 미친 듯이 좇는 세속적인 아름다움과 성공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기만의 세계에 거주해왔다.

    일단 이 여자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임에도 메이크업에 반대한다. 그래서 언제나 노메이크업으로 다닌다. 스킨로션을 제외하고 피부 노화를 막는 어떤 제품도 바르지 않는다. 심지어 머리도 빚지 않는다. 어떤 순간에도 자기 자신을 속이거나 위장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자기 나이를 사랑하고 주름이 생기고 피부에 탄력이 없어지는 늙어감의 증후까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녀는 아주 편안하게 기쁜 마음으로 곧 마흔을 맞는다.

    그런가 하면 미애는 전직 모델 출신답게 누구보다 스타일이 좋다. 그래서 물어보면 대부분 동대문이나 동남아에서 산 싸구려 옷들뿐이다. 유명 브랜드라고 해봐야 기껏 리바이스 청바지 정도가 전부다. 그런데 옷 입는 방식이 탁월하다. 특히 청바지와 함께 베트남이나 중국, 터키 등에서 구입한 민족 의상이나 소품을 매치해 입기를 좋아하는데, 때로는 키르기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같은, 우리에게 화성만큼이나 낯선 변방의 옷을 캐주얼하게 소화해낸다. 하지만 민족 의상을 좋아하는 그녀의 변은 너무나 심플하다. “나처럼 아무 생각 없이 옷 입는 사람들한테 청바지만큼 좋은 아이템이 없는데, 중국의 비단옷이나 베트남의 아오자이, 몽고 장화, 터키의 로브 같은 민족 의상들이 청바지와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릴뿐더러 파티 웨어로도 손색이 없기 때문이야.”

    사실 미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 여자가 속한 그 유별난 가족부터 떠올릴 것이다. 두 아이와 ‘꼬꼿’이라는 겁나게 큰 개까지 데리고 서울에서 파리까지 버스 여행을 한답시고 온갖 고생스러운 경험을 사서 했던 그 유명한 ‘루이와 미애’ 부부 말이다. 프랑스 남편인 루이는 사진가로, 한국인 아내 미애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한창 잘나갈 때 느닷없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멋진 이동 주택으로 개조한 낡은 버스를 타고 떠났다. 그때 자기들이 기르던 까마귀라는 이름의 검정 앵무새를 내게 맡기며 미애는 이렇게 말했었다. “모든 열정이 바닥났어. 그런데 나는 여전히 시간에 쫓기듯 살고 있더라. 그래서 떠나는 거야. 이번 여행을 통해서 우리 가족이 아예 눌러살 도시를 찾으려고 해. 새로운 에너지가 있는 곳 말이야.”

    그로부터 5개월 뒤에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온 그들과의 해후를 잊을 수가 없다. 전셋집과 스튜디오를 처분해서 여행 경비를 마련했던 이들 부부는 서울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버스 안에서 살았다. 갈 곳이 막막했지만 그들은 그 어느때보다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그때가 정확히 2002년 12월 어느 날 대통령 선거가 있던 날 밤이었는데 우리는 시청 앞에서 만났다. 안에는 솜이 들어 있고 밖에는 커다란 무늬가 금사로 수놓인 특이한 민족 의상에 리바이스 청바지를 받쳐 입은 미애와 루이가 샴페인에 와인잔까지 들고 나와 우리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 나에게 축배를 던졌다.

    그런데 그들이 결국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루이는 이미 중국에서 터를 잡고 있고 미애는 아직 한국에 남아 남편과 합류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보보스라는, 돈 쓰는 방식을 통해 자신이 속물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이는 가짜 보헤미안들이 패션계에 날로 많아지고 있는데, 마지막 남은 진짜 보헤미안은 이제 이곳을 떠나려고 한다. 그래서 분하고 원통하다.

    http://h21.hani.co.kr/section-021099000/2004/10/021099000200410130530071.html

    2004년 10월 13일 자니까, 4년이 지난 지금. 뭐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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