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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얼굴은 불빛 아래 -하재연
    영감 혹은 그 원천 (나의 취미생활) 2010. 3. 24. 15:50


     불빛이 타는 거리를 지나 세 사람의 광장을 지나 벌
    과 꿀의 언덕을 넘으면 푸른 잿빛 거리 지나 초록 기
    찻길을 지나 붉은 강물의 길로 들어서면 여름 봄 겨울
    이 가고 깨어진 노란 머리 여자애들이 유리병을 창문
    밖으로 던지며 깔깔거리고 나는 온통 젖어 불빛에 타
    고 가을이 지나가고 내가 가진 모든 동전들이 없어지
    고 회전목마의 말들이 뚜벅뚜벅 꿈속으로 들어서듯이
    네 얼굴은 불빛 아래 돌고

     가로등 아래 트럼펫을 부는 사내 까만 점을 빛내며
    웃고 가끔 너는 행복하다 말하고 가끔 너는 슬프다 말
    하고 네 얼굴은 불빛 알래 아무도 몰라보게 허옇게 분
    칠을 하고 혁명의 거리를 지나 하나뿐인 길을 건너 삐
    걱거리는 침대의 보도를 밟으면 내 발자국은 반복되
    는 마지막 소절 주제를 잊고 느리게 흘러가는 기이한
    간주

     네 손가락에 차갑게 얼어 있는 네 손마디에 기록되
    지 않는 귀청을 뚫고 지나가는 나는 싸구려 선술집의
    주크박스에서 삼만 년 째 돌고 있는 차가운 맥주 거품
    처럼 꺼져가는 너의 목소리는 네 머릿속에서만 흘러나
    오고 너의 목소리는 지상의 만 분의 일 초도 흉내 내
    지 못하고 북극에서 차를 몰고 달려온 사내의 병 속에
    서 투명하고 아름다운 알약들이 꽃처럼 피어나고 흩어
    지고 죽음 같은 음도 고요한 칼날도 지각하지 못하는
    네 손가락이 만지는 허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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